줄기세포는 현장에서 종사하는 연구자뿐 아니라 많은 대중들에게 ‘꿈의 의학’으로 남아 있다. 특히 만능줄기세포는 더욱 큰 주목을 받아 ‘바이오 연구의 꽃’으로 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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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춘제 세종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
만능줄기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노화, 질병, 사고 등으로 세포조직이 손상될 경우 자동차 부품처럼 교체할 수 있게 해줄 전망이다. 미래 재생의학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세포를 이식할 경우 암처럼 무한히 분열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임상적용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문제다. 만능줄기세포가 암세포처럼 끊임없이 분열하는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체의 모든 세포로 변할 수 있는 만능분화능력을 갖고 있어 ‘줄기세포성(stemness)’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세포이식을 하려면 이 줄기세포성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한 기반연구가 필수적이다. 국내 연구진이 만능줄기세포의 분화력을 조절하는 분자를 발굴했다는 소식이다.
류춘제 세종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팀은 조절단백질 ‘hnRNPA2/B1’을 발굴해 줄기세포 연구분야의 권위 학술지 ‘스템셀즈(Stem Cells)’ 2013년 3월 14일자 온라인판에 논문을 게재했다.
줄기세포성 조절하는 단백질 발굴
류춘제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만능줄기세포의 임상적 응용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암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암줄기세포 표적분자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암세포도 줄기세포처럼 줄기세포성을 가진 모세포에서 기원해 성장·분화한다는 이론을 적용한다면 암줄기세포를 제거할 경우 암의 근본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만능줄기세포의 줄기세포성 조절분자로는 ‘Oct4’, ‘Sox2’, ‘Nanog’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의 발현이 줄기세포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여전이 논란 속에 있어요.
최근에는 세포분열과 분화를 조절하는 세포주기 조절이 중요한 기전이 될 것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분자가 그러한 역할을 할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류 교수팀은 특정 단백질 ‘hnRNPA2/B1’이 암세포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을 바탕으로 해당 단백질이 만능줄기세포의 줄기세포성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증명했다.
‘hnRNPA2/B1’은 폐암의 조기 진단 표지자로 처음 알려진 이후 대장암, 췌장암, 유방암, 간암, 위암, 뇌암 등 다양한 암 종에서 과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암세포 증식과 종양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전해진 것이다.
“우리팀은 아직 분화하지 않은 암세포 유지에 필요한 이 분자가 만능줄기세포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실험을 하다 보니 ‘hnRNPA2/B1’ 단백질이 세포주기 억제자인 ‘p27’의 발현과 암 발생 억제자인 ‘p53’의 활성을 억제하고 세포주기 촉진자인 ‘cyc D1’, ‘cyc E’ 발현을 촉진, 세포의 생존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 전달자인 ‘PI3K/Akt’의 활성을 촉진하더군요.”
연구팀은 ‘hnRNPA2/B1’ 단백질 발현이 억제된 만능줄기세포에서 분화가 유도되기 전에 우선적으로 세포주기의 길이가 늘어남을 증명했다. ‘hnRNPA2/B1’은 만능줄기세포 줄기세포성 조절을 분화유전자의 직접적인 조절보다 세포주기 조절로 세포주기 전이를 촉진해 수행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셈이다.
류 교수는 “원인은 세포주기 조절이며 결과는 세포의 분화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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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인간배아줄기세포와 hnRNPA2/B1 유전자 발현이 결핍된 인간배아줄기세포의 모양을 비교한 그림. 발현이 결핍된 세포는 빽빽이 붙어있는 정상 세포에 비해 세포 모양이 섬유아세포처럼 퍼지고 개별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 |
암줄기세포 연구에 응용 가능해
류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암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hnRNPA2/B1’과 같은 분자가 만능줄기세포 줄기세포성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밝힌 원천 지식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이로써 향후 암 발생 기원인 암줄기세포의 줄기세포성에 대한 연구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만능줄기세포 줄기세포성 조절 기전이 세포주기 조절에 있다는 것을 밝힌 원천적인 기초 지식연구입니다. 만능줄기세포가 배양접시에서 암세포처럼 무한히 분열할 수 있는 것은 hnRNPA2/B1 이 세포분열을 계속 촉진하고 분화를 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hnRNPA2/B1 분자 발현 조절로 만능줄기세포의 증식과 분화를 인위적으로 유도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죠.”
류 교수가 본 연구를 시작한 것은 만능줄기세포 재생과 만능분화능력을 조절하는 분자를 찾던 중 우연히 hnRNPA2/B1 을 접하면서부터다. hnRNPA2/B1 은 다양한 암 종에서 암세포 증식과 종양 형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는 단백질이다.
류 교수는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hnRNPA2/B1 이 만능줄기세포 줄기세포성 조절에도 중요한 분자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실험을 진행해 현재까지 이르게 됐다.
“hnRNPA2/B1 이 만능줄기세포 줄기세포성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긴 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hnRNPA2/B1 이 세포주기를 조절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우연찮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현재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는 많은 난관도 있었다. 논문 투고 후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평가과정에서 한 심사위원으로부터 hnRNPA2/B1 발현을 억제한 후 만능줄기세포의 세포주기가 억제되고 분화가 시작된 것에 대해, 둘 중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증명해야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심사위원이 직접 실험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의 실험방법으로는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두 과정이 거의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었죠.”
류 교수는 고민 끝에 hnRNPA2/B1 발현억제를 시작한 후 시간을 매우 세분화해 분석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먼저 시작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고 세분화 하는 과정에서 세포주기 조절이 먼저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험결과를 제시하자 논문은 무수정 통과됐다.
이번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류 교수는 “hnRNPA2/B1을 조절해 만능줄기세포 분화를 인위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세포이식시 남아있는 미분화 만능줄기세포를 분화 유도해 암발생 위험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이야기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기반으로 향후 다양한 암세포에서 hnRNPA2/B1 가 실제로 줄기세포성에 기여하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더불어 hnRNPA2/B1 이 암줄기세포 줄기세포성 유지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도 연구할 계획이다.
류 교수는 “앞으로의 연구가 hnRNPA2/B1 발현을 조절하는 물질 발굴에도 응용돼 암줄기세포를 타깃으로 하는 약물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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